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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
10万人の宮崎勤
ここに10万人の宮崎勤がいます
형태
뉴스·와이드쇼 영상 / 도시전설형 로스트 미디어
제작 국가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추정 방송 시기
1989년 8월 중순
관련 행사
코믹마켓 36(C36)
행사 일시
1989년 8월 13일 ~ 14일
행사 장소
하루미 도쿄국제견본시장
관련 사건
도쿄·사이타마 연속 유아 유괴 살인사건 보도 여파
추정 방송사 후보
TBS, 후지 TV 등
자주 거론된 인물
도카이바야시 노리코(東海林のり子, 본인은 부정)
주요 로스트 대상
문제 발언이 담겼다고 전해지는 TV 보도 영상
현존 자료
1989년·2004년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증언
신문·잡지의 유사 표현
2017년 이후 검증 기사·동인지
일부 C36 취재 영상으로 추정되는 자료
현재 상태
존재 여부 미확인
목차
1. 개요2. 배경3. 문제의 발언4. 현존 자료5. 수색 과정
5.1. 1989년 8월: C36 개최와 매스컴 취재5.2. 1989년 8월 말: 『おたくの本』의 기록5.3.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도시전설화5.4. 2004년: 요네자와의 재서술과 전승 강화5.5. 2010년: TV 편성표 조사5.6. 2017년: dragoner의 본격 검증5.7. 2018년~2019년: 검증 동인지 발행5.8. 2021년: Theつぶろ의 재검토5.9. 2024년~2025년: 로스트 미디어 위키 편입과 추가 편성표 확인
6. 주요 가설7. 현재 상태8. 외부 링크


1. 개요 [편집]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는 1989년 코믹마켓 36 회장을 취재한 일본의 TV 리포터가 참가자들을 향해 “여기에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는 미확인 뉴스·와이드쇼 영상이다.[A][B]

이 문서에서 다루는 로스트 미디어의 본체는 1989년 코믹마켓 36 자체가 아니라, 문제의 문구가 실제 TV 방송에서 나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원 방송 영상이다. 현재까지 다수의 목격담과 후대 증언은 존재하지만, 해당 발언이 담긴 확정 영상은 발견되지 않았다.[A][B]

이 소문은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발생한 도쿄·사이타마 연속 유아 유괴 살인사건 이후, 범인 미야자키 츠토무가 오타쿠·동인지 문화와 연결되어 보도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형성되었다.[B] 코믹마켓 공식 연표에 따르면 C36은 1989년 8월 13~14일 하루미에서 열렸고, 참가 서클 10,000개, 참가자 10만 명 규모였으며, 범인의 서클 참가 경험 때문에 스태프가 매스컴 대응에 쫓겼다고 기록되어 있다.[C]

다만 현재의 검증 결과를 종합하면, 이 발언은 실제 방송이 아니라 당시 언론의 오타쿠 비난 분위기, 유사한 신문·잡지 표현, 후대의 기억 왜곡, 2000년대 인터넷 전승이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전설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도 영상 자체의 존재를 확정하지 않고 `存在性待定`으로 분류한다.[B]

2. 배경 [편집]

1989년 여름,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범인이 비디오·만화·동인지 문화와 연결되어 보도되면서 당시 `오타쿠족`에 대한 강한 비난과 편견이 확산되었다.[D]

코믹마켓 36은 바로 이 시기에 열렸다. 공식 연표는 C36을 1989년 8월 13~14일 하루미 도쿄국제견본시장에서 열린 행사로 기록하고, 참가자는 10만 명이었다고 적는다.[C] 또 같은 연표는 연속 유아 유괴 살인사건 범인에게 서클 참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스태프가 마스컴 대응에 쫓겼다고 설명한다.[C]

이 때문에 1989년 C36은 단순한 동인지 즉매회가 아니라, 매스컴의 오타쿠 보도와 충돌한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MANTANWEB의 2018년 코믹마켓 회고 기사도, 1989년 사건 뒤 코믹마켓이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1991년 유해 코믹 문제 등으로 이어지는 위기가 있었다고 설명한다.[D]

3. 문제의 발언 [편집]

전승상 문제의 문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 알려져 있다.
ここに10万人の宮崎勤がいます!

한국어로는 `여기에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있습니다!`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이 문구는 코믹마켓 회장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을 모두 미야자키 츠토무와 동일시하는 매우 차별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A][B]

그러나 현재까지 확정된 원 방송 영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담은 많지만, 리포터의 성별, 방송국, 프로그램명, 발언 상황이 서로 크게 엇갈린다.[B] 2021년 Theつぶろ의 검토 글도, 증언상 리포터가 여성이라는 말과 남성이라는 말이 함께 나오며, 목격 증언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E]

4. 현존 자료 [편집]

현재 확인 가능한 관련 자료는 다음과 같다.
  • 1989년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증언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현재 확인 가능한 가장 이른 증언으로, 1989년 8월 말 발간된 『別冊宝島104 おたくの本』의 요네자와 요시히로 글을 든다.[B] 해당 글에서 요네자와는 코믹마켓을 비밀집회처럼 취재하러 온 매스컴이 규모에 놀랐고, “여기에 10만 명의 미야자키가 있다”고 매스컴도 있었다고 적었다.[B]
  • 2004년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재서술
    2004년 『マンガ同人誌エトセトラ ’82-’98』에 실린 요네자와의 글에서는 표현이 바뀌어, “여기에는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있다”는 코멘트를 붙인 TV국도 있었다고 적힌 것으로 전해진다.[B][E] 이 때문에 `신문·잡지의 문구였는가`, `실제 TV 발언이었는가`라는 쟁점이 생겼다.[B]
  • 1989년 8월 21일 사이타마신문 기사
    Theつぶろ는 1989년 8월 21일 사이타마신문에, 10만 명이 모인 코믹마켓 회장 안의 한 사람이 미야자키였다는 취지의 기사가 있었다고 소개한다.[E] 이 표현은 직접적으로 “10만 명의 미야자키”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후대 기억과 결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유사 표현으로 거론된다.[E]
  • 1989년 잡지의 유사 표현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1989년 당시 『週刊文春』, 『週刊ポスト』, 『Themis』 등에 오타쿠 집단과 미야자키를 연결하는 강한 표현이 있었다고 정리한다.[B] 예컨대 “미야자키의 클론 같은 무리”, “제2의 미야자키가 나올 가능성” 같은 표현이 인용된다.[B]
  • 2017년 이후의 검증 기사·동인지
    웹라이터 dragoner, 즉 이스루기 류진은 2017년 `10万人の宮崎勤` 보도 여부를 조사했고, 이후 30년차 검증 동인지 『30年目の「10万人の宮崎勤」』도 발행했다.[F] 현재 해당 Yahoo!ニュース 원문은 일반 검색에서 직접 열람이 어렵지만, 여러 후대 글이 이를 인용한다.[G]
  • C36 취재 영상으로 추정되는 자료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1992년 4월 1일 후지 TV 특番 「スクープスペシャル・ワイドショー衝撃映像決定版!」에서, C36 회장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미야자키 사건 관련 인터뷰를 받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상이 있다고 정리한다.[B] 이 영상은 문제의 “10만 명” 발언 자체를 담은 것은 아니지만, 당시 방송사가 실제로 C36 또는 그와 유사한 현장을 취재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주변 자료로 취급된다.[B]

5. 수색 과정 [편집]

5.1. 1989년 8월: C36 개최와 매스컴 취재 [편집]

1989년 8월 13~14일, 코믹마켓 36이 하루미 도쿄국제견본시장에서 개최되었다.[C] 공식 연표는 이 행사의 참가자 수를 10만 명으로 적고, 사건 범인의 서클 참가 경험 때문에 스태프가 마스컴 대응에 쫓겼다고 기록한다.[C]

이 시점에 실제 매스컴 취재가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여기에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있다”는 발언이 TV 방송으로 나갔는지는 이때부터 현재까지 확정되지 않았다.[A][B]

5.2. 1989년 8월 말: 『おたくの本』의 기록 [편집]

문제의 표현과 가장 가까운 초기 기록은 1989년 8월 말 발간된 『別冊宝島104 おたくの本』의 요네자와 요시히로 글이다.[B] 이 글에서 요네자와는 “ここに十万人の宮崎がいると書いたマスコミもあった”라고 적었다.[B]

중요한 점은, 1989년의 표현이 `말했다`가 아니라 `썼다`는 점이다. 즉 초기 증언만 놓고 보면, 문제의 문구는 TV 생중계 발언이 아니라 신문·잡지 등 문자 매체의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B][E]

5.3.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도시전설화 [편집]

2000년대 들어 이 이야기는 “어떤 여성 리포터가 코믹마켓 회장에서 직접 외쳤다”는 형태로 인터넷에 퍼졌다.[B] 특히 도카이바야시 노리코가 발언자였다는 설이 널리 퍼졌지만, 후대 인터뷰에서 본인은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H]

Theつぶろ의 댓글란에도 도카이바야시가 말했다고 들었다는 기억, 더 젊은 여성 리포터였다는 기억, 남성 리포터였다는 기억이 섞여 있다.[E] 이처럼 전승이 퍼질수록 발언자와 방송국이 서로 달라졌다.

5.4. 2004년: 요네자와의 재서술과 전승 강화 [편집]

2004년 『マンガ同人誌エトセトラ ’82-’98』에 실린 요네자와의 글은, 1989년의 “썼다”는 표현과 달리 `그런 코멘트를 붙인 TV국도 있었다`는 식으로 정리된 것으로 전해진다.[B][E]

Theつぶろ는 이를 두고, 2004년 시점에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TV 리포터가 발언했다`는 전승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요네자와의 기억이 후대 전승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E] 반대로 이 재서술을 근거로 실제 TV 방송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B]

5.5. 2010년: TV 편성표 조사 [편집]

2010년 8월, はてな匿名ダイアリー에는 1989년 8월 중순 와이드쇼 편성표를 조사한 글이 올라왔다.[I] 작성자는 당시 와이드쇼에서 미야자키 사건 관련 특집이 다수 있었음을 확인했으나, 이 글만으로 문제의 발언이 특정되지는 않았다.[I]

이 시기부터 수색은 단순 목격담 수집이 아니라, 실제 신문 축쇄판과 TV 편성표를 대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5.6. 2017년: dragoner의 본격 검증 [편집]

2017년 웹라이터 dragoner는 SNS를 통해 “10万人の宮崎勤” 관련 증언을 모집하고, Yahoo!ニュース 개인 기사로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B][G]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에 따르면, 그는 다수의 증언을 받았지만 리포터 성별, 방송국, 상황이 모두 엇갈렸고, 설과 일치하는 확정 영상은 찾지 못했다.[B]

후대 정리에 따르면, dragoner는 당시 신문·週刊誌에 유사 표현은 많았지만 정확히 `10万人の宮崎勤`이라는 문구는 확인되지 않았고, TV에서 봤다는 증언도 서로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B]

5.7. 2018년~2019년: 검증 동인지 발행 [편집]

dragoner는 이후 검증 내용을 동인지 형태로 정리해 『30年目の「10万人の宮崎勤」』를 발행했다.[F] 이 책은 사건 당시의 오타쿠 보도와 “10万人の宮崎勤” 전승을 검토한 자료로 소개된다.[F]

후대 리뷰는 이 책의 결론을, 널리 믿어진 전승이지만 실제로는 증거가 약하다는 쪽으로 소개한다.[J]

5.8. 2021년: Theつぶろ의 재검토 [편집]

2021년 Theつぶろ는 이 전승을 다시 검토했다.[E] 해당 글은 1989년 『おたくの本』의 “썼다”는 표현, 2004년의 “TV국” 표현, 1989년 8월 21일 사이타마신문의 유사 표현, TBS 『3時にあいましょう』 1989년 8월 17일 회차 후보 등을 정리했다.[E]

Theつぶろ는 실제 영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당시 TBS 편성표에 `宮崎予備軍は増えるか`로 보이는 제목이 있었고, 적어도 오타쿠를 `미야자키 예비군`처럼 취급한 보도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고 보았다.[E]

5.9. 2024년~2025년: 로스트 미디어 위키 편입과 추가 편성표 확인 [편집]

일본어 비공식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2024년 8월 30일 이 항목을 `존재 미확인 뉴스 영상`으로 정리했다.[A]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2025년 5월 27일 항목을 만들고, 2025년 8월까지 업데이트했다.[B]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2025년 8월 6일, B站 이용자 `ブロンサワー`가 1989년 8월 17일 TBS 『3時にあいましょう』의 제목이 실제로 `宮崎予備軍は増えるか`였음을 확인했다고 정리한다.[B] 다만 이 역시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 발언 자체의 확정 증거는 아니다.[B]

6. 주요 가설 [편집]

  • 실제 TV 발언설
    가장 전통적인 전승이다. 어떤 와이드쇼 리포터가 C36 현장에서 실제로 `ここに10万人の宮崎勤がいます`라고 말했다는 설이다.[A][B]
    문제는 방송국, 리포터, 날짜, 상황에 대한 증언이 서로 맞지 않고, 현재까지 확정 영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B][E]
  • 신문·잡지 문구 오인설
    1989년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최초 증언은 `말했다`가 아니라 `썼다`였다.[B] Theつぶろ는 1989년 8월 21일 사이타마신문 기사와 같은 유사 표현이 후대 기억에서 `TV 발언`으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E]
    현재 가장 보수적인 해석 중 하나다.
  • TBS 『3時にあいましょう』 1989년 8월 17일 회차설
    일부 목격담은 TBS 『3時にあいましょう』에서 해당 보도를 봤다고 주장한다.[E] 2025년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1989년 8월 17일 해당 프로그램의 제목이 `宮崎予備軍は増えるか`였음이 확인되었다고 정리했다.[B]
    다만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10万人の宮崎勤`이라는 문구를 썼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B][E]
  • 도카이바야시 노리코 발언설
    인터넷상에서 오랫동안 가장 널리 퍼진 발언자설이다.[B] 그러나 도카이바야시 본인은 “말하지 않았다, 말할 리 없다”, “코믹마켓에 간 적도 없다”는 취지로 강하게 부정한 것으로 정리된다.[B][H]
    또한 당시 도카이바야시는 TBS가 아니라 후지 TV 쪽 리포터였다는 지적도 있다.[B]
  • 후지 TV 취재 영상 혼동설
    중국 로스트 미디어 위키는 1992년 후지 TV 특番에, C36으로 보이는 회장에서 미야자키 사건과 관련해 인터뷰를 받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상이 있다고 정리한다.[B]
    이 영상이 실제 C36 취재 자료라면, 후지 TV가 회장 취재를 했다는 정황은 강화된다. 다만 이것이 문제 발언 영상이라는 증거는 없다.[B]
  • 집단기억·상징화설
    로스트 미디어 중국어 위키는 겸광 다니엘 마코토의 말을 인용해,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실제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오타쿠들이 겪은 고통과 굴욕의 결실 같은 공동체험이라고 정리한다.[B]
    이 설은 영상 존재 여부와 별개로, 해당 문구가 1989년 이후 오타쿠 배싱의 상징으로 기능했다는 점을 설명한다.
  • 2000년대 이후 창작물·인터넷 전승 확대설
    후대 정리에서는 2004년 전후 인터넷과 만화·동인지 속에서 이 표현이 다시 유통되며 도시전설로 굳어졌다고 본다.[B][J]
    이 경우 `실제 발언`보다 `후대 인용과 재연`이 기억을 강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7. 현재 상태 [편집]

2026년 현재, `10만 명의 미야자키 츠토무` 발언이 담긴 확정 TV 영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C36의 개최와 참가자 수, 당시 마스컴 대응, 오타쿠 배싱 분위기, 신문·잡지의 유사 표현,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1989년·2004년 증언은 확인된다.[C][D][B][E]

그러나 문제의 핵심인 `ここに10万人の宮崎勤がいます`라는 방송 발언의 원본 영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A][B] 따라서 로스트 미디어 위키 분류상으로는 존재 여부 미확인이 가장 적절하다.

문서 작성 시에는 이 항목을 `실제로 있었던 차별 방송`으로 단정하기보다, `1989년 오타쿠 배싱의 현실과 후대 도시전설이 결합한 미확인 뉴스 영상`으로 쓰는 편이 안전하다.

8. 외부 링크 [편집]